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부동산 기획보도:일본처럼 대폭락,붕괴후 경제적 가격형성

728x90

경향신문의 기획취재 보도기사/자료를 옮겨온 것입니다.

- 경향신문 / 2010. 5. 24 / 특별취재팀 최민영·이주영·김기범·임아영 기자, 김설아·황성호 인턴기자
- 기획취재 " 주거의 사회학 : 일본의 과오로 부터 배운다 "
(한국의 부동산경제 실황은 일본의 거품붕괴와 판박이)

‘부동산 불패신화’로 의기양양하던 일본사회에 1991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버블의 붕괴는 충격이었다. 은행과 기업의 도산, 이에 따른 실업률 증가 등 소위 ‘잃어버린 10년’은 버블 붕괴의 대표적인 후유증이었다. 2010년 현재, 일본의 부동산 시가는 20년전 대비 70%가량 하락한 상태다. 부동산투자로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일본의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일까.

■ 부동산 버블붕괴 前

기업·은행·민간 너도나도 부동산 투자
집·땅값 상승 부추겨… 거품낀 한국과 판박이

도쿄 아다치구(足立區)에 사는 기노시타 히로미(53)는 2000년 현재 살고 있는 76㎡짜리 아파트를 구입했다. 집값이 더 이상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시점에 내린 결정이다.

가격은 3900만엔(약 4억3000만원).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당시의 절반도 되지 않은 액수였다. 그는 “집을 장만하기 전 월세 15만엔(185만원)에 주택을 임대했는데, 주택을 구입하더라도 월 대출상환액이 15만5000엔으로 큰 차이가 없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인 80년대에는 집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같은 얘기는 더이상 일본엔 없다. 나처럼 대출상환 부담과 월세를 비교해서 큰 차이가 없거나 상환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주택을 산다”고 덧붙였다.



버블 붕괴 이전까지 일본의 상황은 한국 주택시장의 풍경과 ‘판박이’였다. 일본 메이카이(明海)대학 부동산 학부의 표명영 교수는 이미 “한국 부동산 시장이 거품 붕괴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 부동산 시장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장의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고 개인과 기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부동산 수익을 기대한 상황이 특히 그랬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얽혀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엔화 가치가 1달러 240엔에서 120엔대로 급상승하자 일본정부는 엔고에 따른 불황을 막고 국내 수요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 2.5% 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유지했다. 또 당시 보수성향의 나카소네 내각은 법인세를 42%에서 30%로, 소득세 최고세율도 70%에서 40%로 낮추는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펼쳤다. 그 바람에 늘어난 부유층의 가용자금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은행들은 우량제조업에 대한 대출 대신 부동산 투자나 민간의 주택융자를 통해 수익을 냈다. 풀린 돈은 다시 투기자금화하면서 부동산으로 쏠려 집값과 땅값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도쿄 23개구의 땅값이 미국 전 국토의 땅값과 맞먹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거품에 취한 기업과 은행의 경영은 방만했다. 기업은 담보로 잡힌 토지의 가격상승을 예상하고 경영을 다각화하거나 위험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익률을 높이기보다는 부동산 가격상승에 따른 자산 부풀리기에 더 신경을 쏟았다. 은행은 통상 토지담보 평가액의 70%까지 융자하던 것을 120%까지 확대했다.

민간에서는 소위 ‘주택 주사위 놀이’가 벌어졌다. 주택 주사위 놀이란 젊었을 때 소형주택을 구입한 뒤 이를 굴려 큰 집으로 늘려나가는 방식을 일컫는 표현이다. 적금을 붓거나 은행에서 대출받아서는 집을 사는 건 불가능했다. 도쿄에 거주하는 기쿠치 켄(40)은 “요즘만 해도 젊은이들이 집을 사려는 엄두를 못내지만, 당시에는 대출을 끼고 집을 산 뒤 이를 되팔아 차익을 남기면서 더 큰 집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집값은 얼마나 올랐나. 1981년 수도권의 신축아파트 평균가격은 2616만엔. 1990년 버블의 정점에는 6123만엔으로 10년 만에 무려 2~3배가 뛰었다. 미룰수록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너도나도 앞다퉈 집을 사려고 했고, 수요자가 늘수록 집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이같은 주택가격 폭등은 공급부족으로 빚어진 게 아니었다. 1973년에 이미 도쿄 등 모든 광역자치단체의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선 수준이었다. 문제는 주택이 ‘주거’가 아닌 ‘투자재’ 개념으로 변질돼있었다는 점이다. 주택투기로 성공한 사례가 늘어날수록 주택의 추가공급은 투기확대의 호재일 뿐이었다. 도쿄 도심 23구에 더 이상 개발할 곳이 없을 정도가 되고, 땅값도 계속해서 치솟자 건설회사들은 수도권으로 눈을 돌렸다. 이때 요코하마(橫濱), 사이타마(埼玉) 등 주변의 신도시들에 대한 개발이 진행됐다.

부동산경기의 과열 징후는 뚜렷했다. 80년대 후반의 1인당 GNI 대비 부동산가격 지가지수의 비율은 장기적인 평균치보다 최대 25% 높았고, 6대 도시의 경우 최대 102% 정도를 상회했다. 그 정도에 상응하는 ‘거품’이 끼어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택가격 상승은 개인들의 재산수준에 대한 착시, 즉 ‘재산효과’를 일으켜 씀씀이가 커졌다.

■ 부동산 버블붕괴 後
도쿄 평균지가 반토막… 신도시마다 빈집 늘어
사회문제로까지 확대… 정리해고 등 고통 심화

붕괴는 완만하게 시작됐다. 전국적인 땅값이 1991년 3·4분기를 기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유추할 때 정확한 시점은 1990년 11월쯤으로 보인다. 정작 일본 정부는 1992년 경제백서를 통해 일본 경제가 일시적 조정국면이며, 거품 붕괴로 일본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와 분석자료를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때의 경기침체를 단순한 경기순환에 따른 것으로 오판했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재정확대로 경기부양을 꾀했다. 실제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한 기업과 가계의 파산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크게 늘어났는데도 일본 정부는 금융기관 부실을 우려해 각종 금융완화 정책을 내놨다. 이로 인해 100조엔 이상의 막대한 예산을 금융기관 등에 투입했지만 성과없이 정부의 재정건전성만 악화됐다.

부동산 버블이 심각해진 뒤에서야 금융긴축 정책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정책의 연착륙에 실패했다. 특히 15개월 만에 공정금리가 3.5% 인상되자 시장은 얼어붙었다. 게다가 지가세, 상속세 강화 등 세금을 통한 규제는 1992년에서야 도입되면서 오히려 버블 붕괴를 심화시켰다. 경기침체는 뚜렷해졌고 1997년 이후에는 정리해고와 채용억제 등 민간부문에서 고통이 심화됐다. 가격 추락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부동산 투매가 계속됐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태의 본질을 뒤늦게 깨달은 일본 정부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한 것은 98년 2월 관련법을 제정하면서였다.


불패신화는 깨졌다. 도쿄의 평균지가는 1992년부터 13년간 연속 하락해 2004년의 평균 공시지가는 1991년의 45% 수준에 불과했다. 1991년 1억1520만엔에 달했던 도쿄 23구내 신규분양 75㎡짜리 맨션의 가격은 현재 반값도 안되는 5400만엔 수준이다. 수도권의 같은 크기의 맨션 가격도 고점을 찍은 1990년 1억298만엔에서 현재 반값 미만인 4965만엔으로 떨어졌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도쿄의 아카사카·아오야마·아자부 등 ‘트리플A’ 지역의 분양가는 현재 평당 2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내진설계 등 특수공법으로 건축비가 한국보다 더 들지만 서울 강남보다 1000만원가량 싸다. 버블 당시 도쿄 외곽에 지어졌던 신도시에는 빈 집들이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집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버블 붕괴를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재일교포 3세인 직장인 박종명씨(51)는 13년 전 도쿄 시내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의 외곽지역에 단독주택을 구입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출·퇴근이나 아이들 등·하교도 모두 1시간쯤 걸리는 데다, 주택구입 당시에 비해 집값이 계속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요. 도심의 편리한 위치의 주택은 아직도 사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곳의 주택은 가격이 싸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서 팔려고 내놔도 나가질 않습니다. 어찌됐든 버블이 끝난 다음에는 서민들도 어떻게든 집을 살 수는 있게 됐어요.”

도쿄도에 따르면 1991년의 신규분양하는 맨션 가격인 1억1520만엔은 도쿄도민 평균 연수입의 15.8배에 달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이 비율은 8.0배까지 낮아졌다.

일본 국민의 ‘집’에 대한 생각은 이제 보유에서 임차로 변화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토지동향에 관한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토지는 소유와 임차 어느 쪽이 유리한가?’라는 질문에 1993년 일본인 66.7%가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임대하는 것이 유리’라는 답은 29.4%에 불과했다. 버블 붕괴가 휩쓸고 간 2003년 같은 질문을 던지자 38.1%만이 ‘소유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답했다. 반면 ‘임차하는 것이 유리’라는 답은 40.6%로 증가했다.

“굳이 집을 사거나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요. 그냥 아내와 함께 월세를 내면서 지금처럼 평범한 빌라에서 살 생각입니다. 집은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잖아요.” 도쿄의 연립주택에 거주하는 다즈케 가즈히사(44)의 말이다.



728x90